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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book > 사회
[사회]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존 휘트필드 | 생각연구소 | 2014-03-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제작형태 : epub
대출현황 :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
듣기기능(TTS)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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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추!>사례 1 인류학자 니콜 헤스는 UC 샌타바버라 대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했다. 당신은 수업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멜리사와 짝이 되었다. 그런데 멜리사는 당신에게 일을 미루고 계획에도 없던 멕시코 여행을 떠나버렸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파티에 갔다가 멜리사가 조교에게 자신이 일을 거의 다하고 당신은 술이 깨지도 않은 채 회의에 나온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덕분에 조교는 당신을 술꾼이라고 생각한다. 멜리사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멜리사가 멕시코 여행에 대해 떠들어댄 자동응답기 메시지도 남아 있다. 멜리사와 조교의 대화가 끝나고 당신은 곧바로 멜리사와 마주친다. 멜리사는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잘 지냈어? 요즘 날씨 정말 좋지 않니?”

    그다음에 헤스는 피험자들에게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멜리사를 때린다, 조교에게 멕시코 여행에 대해 알린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멜리사 험담을 한다, 혹은 비꼬는 기색 없이 “그래, 요즘 날씨 좋지”라고 대답한다 등등….

    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사례 2 인류학자 케빈 크니핀 교수는 자연선택이 집단과 개인 차원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 조정팀에 입단했다. 그런데 조정팀에는 ‘게으름뱅이’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비시즌 체력단련 훈련에 거의 나오는 법이 없었고, 조정 경기 시즌이 시작돼 훈련 빈도가 높아질 때도 제멋대로 행동했다. 크니핀은 팀의 허락을 받아 다른 선수들이 훈련장에 오가며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은 게으름뱅이에 대해 가혹한 비판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게으름뱅이가 없는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가끔은 면전에서도 비판을 가했다.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가 할 줄 아는 게 뭔지 모르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선수가 말했다.

    “저 친구는 조정 선수의 정신이 없어.”

    결국, 이 게으름뱅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속에 내던져진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누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위의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당신이라면 멜리사, 조정팀의 게으름뱅이와 친구가 된다거나 함께 사업을 도모하겠는가? 그들의 행동을 직접 보지 않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만 전해 들어도 당신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례 1의 실험 결과, 많은 사람이 험담을 통해 멜리사를 공격하고 싶어 했고, 사례 2의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게으름뱅이는 조정팀에서 나가게 되었다.

    험담은 나쁜 평가를 받는 행동이지만 이기주의의 위협에 대항하는 집단의 1차 방어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신뢰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조정팀에는 집단의 노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회적 기생충이 있었다. 부정적 험담은 면역 반응과 비슷하다. 위협 요소인 게으름뱅이를 발견하면 사회 조직에 소식을 퍼뜨리고 방어 체계를 가동함으로써, 교화 또는 추방을 목적으로 게으름뱅이의 평판을 깎아내린다.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생각연구소 刊)》(원제: People Will Talk)는 뒷담화와 소문으로 대표되는 ‘평판’의 숨겨진 순기능과 역기능을 다각도로 통찰한다. 집단을 이루어 사는 인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매일 타인의 평판을 생성하고, 이용하며, 자신의 평판을 만들어나간다. ‘세상 사람들의 비평’이라는 뜻의 평판은 집단에 해를 끼치는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하는 신뢰 기준이 되기도 하며, 이기적인 사람을 이타적인 사람으로 이끄는 회초리가 되기도 한다.

    평판은 분명 나의 일부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평판은 내 이미지를 결정하고 나를 쥐고 흔든다. 나는 멜리사의 말 한마디로 술꾼, 불성실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평판으로 인해 앞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때 사람들에게 외면 받을지도 모른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의 사례를 살펴보면 평판의 속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총선 전까지만 해도 이정희의 뒤를 이을 통합진보당의 대표 얼굴로 손꼽혔다. 하지만 진보세력의 차세대 유망주였던 김재연 의원은 현재 진보 분열의 핵심, 종북 국회의원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의 이미지가 변화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타인이 나를 조종하는 리모컨’이 되기도 하는 평판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뭐라고 주장하건 사람들은 ‘경선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고, 그런 부정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개인의 영욕을 위해 의원직을 고수하고 있다, 어서 사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김재연’이라는 존재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바뀌고, 문제의 본질보다 머릿속에 박힌 이미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평판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져 한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평판을 넋 놓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평판이 만들어지면 만들어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야 하는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나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해한다면, 평판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고 평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평판을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친구, 이웃, 동료, 가족 그리고 신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형성하는 관계의 모든 것!

    관계를 지속시키는 평판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접근.




    평판은 공적인 영역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한 출판사가 직원을 채용한 뒤 그 직원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남긴 글을 보고 채용을 취소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요즘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사원을 채용하기 전에 지원자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남긴 글을 점검해 사생활에 문제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한다. 이 때문에 레퓨테이션닷컴(reputation.com), 인테그리티디펜더닷컴(integritydefender.com) 등 개인의 평판을 관리해주는 회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평판 관리 회사는 의뢰인이 인터넷에 남긴 부정적인 흔적, 예를 들면 만취한 사진이라든가 욕설 등을 지워주고 긍정적인 정보가 먼저 뜨도록 검색 순서를 바꿔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는 것일까? 기업들은 왜 직접 겪어보지 않고 평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일까? 인간들 사이에서 평판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관계 속에서 평판이 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걸까? 도대체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걸까? 나를 희생하거나 내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남을 도우려 하는 걸까? 어쩌면 평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 더 깊이 침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진화생물학자인 존 휘트필드는 인간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평판을 진화생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설명한다. 특히 인간처럼 무리를 지어 살고, 다른 개체의 시선을 의식하며 평판을 이용하는 다양한 동물과 물고기 사례를 제시해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평판을 형성하고 이용해왔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동료의 행동을 관찰, 모방해 먹이를 찾는 청가시고기(1장)부터 다른 수컷들의 대결 소리를 엿듣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전략을 세우는 박새(7장),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평판을 관리하는 푸른줄무늬 청소 놀래기(7장), 다른 개체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조작하고 다른 개체의 행동과 능력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권세를 무너뜨리기도 하는 침팬지(7장) 등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공공재 게임, 죄수의 딜레마 게임,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 등 인간이 갖고 있는 모순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행동경제학의 게임 이론을 통해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이 어떤 사람에게 협력하고, 어떤 사람을 처벌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모방은 평판의 어머니?

    평판이 어떻게 생성됐고, 언제부터 인간이 평판을 이용하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을 조목조목 밝혀내다.




    인간은 언제부터, 왜 평판을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평판의 기원을 추정해볼 수 있는 실험이 1980년대 후반 실시되었다. 리 듀거킨 교수는 카리브 해 트리니다드 섬의 산속 개울에 사는 트리니다드 거피를 대상으로 ‘짝짓기 선택 모방’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암컷 커피가 짝을 선택하는 결정적 요인이 수컷의 화려한 꼬리에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듀거킨은 네 개의 투명 상자 안에 관찰자 암컷, 시범자 암컷, 색이 화려한 수컷, 초라한 수컷을 각각 한 마리씩 넣고 이 투명 상자를 어항 안에 집어넣었다. 이때 매력이 떨어지는 초라한 수컷과 가장 가까운 곳에 시범자 암컷의 상자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관찰자 암컷은 시범자 암컷이 화려한 수컷을 두고 초라한 수컷을 선택했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듀거킨이 선택할 기회를 주자 관찰자 암컷은 초라한 수컷에게 다가갔다. 다른 암컷의 짝짓기 사례가 화려한 수컷을 선호하는 내재적 취향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는 물고기조차 동료의 행동을 모방하며 사회적 정보를 얻는다. 인간은 다른 어떤 종보다 사회적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단순히 모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의 의미를 파악하고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도 한다. 우리의 언어, 종교, 풍습, 정치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본 후 선택한 최고의 방안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모방해 나온 결과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릴 때 부모님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면 한 사람이 혼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식견을 접할 수 있다.

    평판이 좋다는 것은 사회적 성공의 신호이자, 모방할 만한 유용한 정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좋은 습성을 모방해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려 한다. 모방이 인간에게 주는 또 다른 혜택은 모방의 대상에게 위신을 부여해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좋은 평판을 얻어 타인의 모범이 되는 것은 여러모로 이익이 된다.

    타이거 우즈를 예로 들어보자. 불륜 스캔들로 평판이 추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로 이름을 날리며 많은 돈을 벌고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스캔들이 터지고 평판이 곤두박질치면서 광고모델을 그만두며 그동안 누려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평판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겠다면 거꾸로 평판이 없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자.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회사의 평판을 모른다면, 친구를 사귀려 하는데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소개팅을 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상대를 파악한 뒤 회사를 다닐 것인지, 이 사람을 계속 만날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가 될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커질 것이다. 따라서 평판은 집단생활을 하는 모든 생물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든,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든 필수 불가결한 이유로 생성,유지,발전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무임승차의 유혹을 차단하고, 올바른 공동체를 유지하는 평판의 순기능에 대한 과학적 고찰!



    평판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동체 내에서 게으름뱅이를 걸러내는 기능과 더불어 너그러운 행동을 장려해 공동체가 잘 유지되도록 하는 기능 또한 갖고 있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 평판이 어떻게 이기적인 마음을 차단하고 너그러운 행동을 장려하는지 살펴보자.

    뉴캐슬대학교 진화심리학부의 카롤리나 실베스터 교수와 길버트 로버츠 교수는 너그러운 사람을 짝으로 선택한다는 개념과 짝을 얻기 위해 경쟁할 때 너그럽게 행동한다는 개념을 주제로 ‘공공재 게임’을 진행했다.

    네 명씩 짝을 지은 피험자들은 각자 소정의 금액을 받아 원하는 만큼 공동 계정에 넣을 수 있었다. 그 공동 계정의 금액은 두 배로 불려 개인별 출자액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나누어주었다. 그 결과 개인과 집단의 이익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공동 계정에 10달러씩 넣으면 게임이 끝난 후 각각 20달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세 명이 10달러를 넣고 한 명은 돈을 넣지 않으면 공동 계정 금액은 30달러가 된다. 이 금액을 두 배로 불려 4등분으로 나누면 각자 15달러씩 받는다. 결국 나머지 세 명은 15달러밖에 받지 못하고,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가지고 있던 10달러를 합해 총 25달러를 갖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임승차에 대한 유혹이 생긴다.

    실베스터 교수와 로버츠 교수는 실험에 한 가지 게임을 추가했다. 공공재 게임이 끝난 후 피험자들은 세 명의 구성원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 2인 게임을 했다. 공동 계정에 돈을 넣고, 그 돈을 나누어 받는다는 점은 동일했다. 1 라운드에서는 공동 계정 금액을 두 배, 보너스 라운드에서는 여덟 배로 곱해 두 피험자에게 배분했다. 따라서 피험자들은 최소한 자신이 낸 금액만큼은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서로 선택한 사람들만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고, 상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피험자는 무작위로 짝을 맺어야 했다.

    그 결과 공동 계정에 돈을 많이 낸 사람이 짝으로 선택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 계정에 많은 금액을 넣는 행위는 너그러운 협력 상대를 찾는 다른 피험자들에게 장점을 광고하는 역할을 했다. 연구팀이 1차 라운드에서는 공동 계정 금액을 두 배, 보너스 라운드에서는 여덟 배로 확대해 협력적인 짝이 주는 장점을 늘리자 공공재 게임에서 너그럽게 행동한 피험자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너그러운 피험자는 원하는 짝과 게임할 확률이 가장 높았고, 실험이 끝났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갖게 되었다.

    이 실험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좋은 평판을 쌓으면 나중에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인간들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그 사람에게 이익을 주며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이기적인 사람을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회초리의 기능을 평판이 담당했던 것이다.





    폭력은 평판을 사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 미국이 냉전에 관여한 것도 평판에 대한 우려 탓…

    폭력을 조장하는 평판의 역기능을 논리적으로 밝혀내다.




    평판은 양날의 검이다. 올바로 사용하면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폭력행위를 조장하고, 마녀사냥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평판이 어떻게 폭력을 부추기는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보통 다툼에는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흔히 싸움은 사람들이 없을 때 벌어지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땐 진정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심리학자 리처드 펠슨은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과의 다툼으로 감옥에 투옥되었던 사람, 투옥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 결과 보는 사람이 있으면 입씨름이 주먹다툼으로 비화될 확률이 두 배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에서는 폭력 충돌의 3분의 2가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데,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4분의 3이나 된다. 외부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젊은이들이 사소한 모욕에도(심지어 오해인 경우도 있다) 서로를 죽이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범죄를 평판의 관점에 비추어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폭력은 생각 없이 저지르는 게 아닌 전략적 범죄이며, 돈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판을 사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다. 폭력은 협력이나 너그러움처럼 힘을 과시하는 신호로 사용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뿐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도록 힘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의 추후 공격을 저지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면 질 줄 뻔히 아는 싸움이더라도 시작하는 편이 이익이 된다.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또한 이러한 평판의 특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후 모든 집단은 싸움에서 한 번 물러서면 적에게 나약함의 신호로 받아들여져 공격을 부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냉에 관여한 것도 평판에 대한 우려 탓이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은 1966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우리가 3만 명의 병력을 잃으면서까지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은 진정으로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국제연합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폭력적이라는 평판을 쌓기 위해 의식적으로 폭력을 선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배신이나 모욕을 당하면 욱하는 마음에 폭력을 쓰면서 명예를 지킨다고 생각한다. 이슬람권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명예 살인 또한 타 문화 사람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고 황당한 범죄지만 내부인들은 명예 살인을 지지하고 심지어 축하하기까지 하는데, 이 또한 더러워진 여성의 평판으로 인해 가족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진화적 산물인 것이다.

    이 외에도 온라인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이슈가 되고 있는 막말녀, 국물녀, 진상녀, 무릎녀 같은 경우 또한 평판의 역기능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과정,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자세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 혹은 표면적인 이유만 본 채 한 사람의 평판이 결정되고 이는 곧 신상털기, 지독한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

    평판은 진실을 뛰어넘는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왜곡된 평판은 사실로 굳어지고 오히려 사실보다 더 생생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된다. 부정 편향을 가진 인간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판을 구축하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워런 버핏의 말이 인간의 이런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외, 익명성이 늘어나면 평판의 견제 기능이 약해져…

    개인, 사회, 더 나아가 국가 차원의 올바른 평판 사용법을 제시하다.




    21세기, 현대사회는 물질화,파편화로 인한 집단성과 협력성 상실, 개인성과 경쟁관계의 증가일로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점차 공익에 무심해지고, 물질적 이익과 자아실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개인성과 익명성은 매력적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면, 타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례를 한 가지 살펴보자.

    2009년, 영국에서는 정보 공개를 주장하는 시민운동가들의 끈질긴 요구와 하원의원들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진 끝에 드디어 하원의원들의 비용 청구서가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영국 정치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산 물건들이 일부 공개되었다. 자키 스미스 내무부 장관은 대형 텔레비전, 욕조 물마개 등 별장에서 사용하는 집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남편과 함께 시청한 유료 포르노 영화 두 편의 요금까지 합해 15만 파운드(약 2억 7,500만 원)가 넘는 돈을 청구했다. 귀족적 성향이 강한 보수당의 더글러스 호그 의원도 시골 별장 주변의 해자 청소비 2,200파운드(약 400만 원)와 피아노 조율비 40파운드(약 7만 원)를 청구했고, 토스터기 비용 20파운드, 쓰레기봉투 값 2.99파운드까지 받아갔다. 이들은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문제는 이들의 주변 환경에 있었다. 이들은 비용 청구서가 공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판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동료들도 대부분 비슷한 행동을 하고(공식적인 수사 결과에 따르면 비용을 과잉 청구한 의원은 절반이 넘었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이 외부에 공개될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세금을 유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성과 익명성은 매력적이지만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만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생산이라는 부정적인 면 또한 갖고 있다. 점점 사회가 각박해져가고, 잔인한 범죄가 증가하며, 이기적인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개인성과 익명성의 증가에 따른 감시 체계의 약화, 즉 평판의 힘 감소에 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평판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존 휘트필드



    존 휘트필드(John Whitfield)는 통섭적인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이처>의 전속 필자였으며, 현재 <사이언스>, <디스커버>, <뉴사이언티스트>, <시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파이낸셜타임스>, <선데이타임스>,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 진화, 생태계, 환경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학문의 영역을 규정짓지 않는 저자의 색다른 시각과 재미있는 글쓰기 방식은 다양한 매체가 그에게 글을 의뢰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 서문 평판이 없으면 관계도 없다



    1장. 관계의 시작, 평판의 탄생

    학습하는 물고기|매력적인 사람은 왜 다 짝이 있는 걸까|아름다운 대상을 모방하라|이익과 불이익



    2장. 좋은 평판 만들기

    거북이 사냥꾼의 비밀|최신 유행하는 허풍|든든한 보험, 선행|의도된 선행의 몰락



    3장. 인간은 왜 친절한가

    이타주의의 진화|사회적 매춘|관찰자의 복수|제 이미지 점수는요|아기도 사람을 판단한다|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인가|협력의 수호자



    4장. 소문 배달꾼

    말, 말, 말|사실을 왜곡하는 소문의 힘|소문이 흐르는 길|동료 네트워크|친분 쌓기의 도구, 뒷담화



    5장. 감정에 주목하라

    자각의 탄생|감정이 보내는 메시지|신뢰의 지침, 세 가지 감정|다스 베이더가 보내는 경고|수치심의 문화와 죄책감의 문화



    6장. 명예를 위하여

    처벌의 욕망|강력한 상호주의 논란|불명예보단 죽음을|무법자의 생존법|합리적인 명예 살인|폭력으로 평판을 사다|명예와 폭력의 부작용



    7장. 교활한 동물의 왕국

    엿보기와 엿듣기 전략|평판을 이용하는 동물들|거짓말하는 침팬지|평판 활용의 챔피언, 청소부 물고기



    8장. 제3의 눈

    눈의 대화|보이지 않는 감시자



    9장. 소문 사용 설명서

    게으름뱅이 방어 체계|나쁜 소문이 더 재밌는 이유|불량식품 같은 연예인 이야기|여성의 무기?



    10장. 사이코패스가 온다

    사이코패스의 매력|사이코패스 낳는 사회|격리된 낙원|나를 혼자 두지 말아요|빅브러더가 사는 세상



    11장. 사생활 전시회

    사용자 평가 조작|온라인 평판의 한계|온라인 공동체의 위험 요소|익명성과의 전쟁|진화된 마녀사냥법|과잉 공유



    12장. 범세계적인 평판 활용법

    팔은 안으로 굽는다|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처벌|독특한 국가 평판 체계|공공재의 비극|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



    감사의 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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