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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병자호란 47일의 굴욕
윤용철 | 말글빛냄 | 2014-01-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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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병자호란 47일의 굴욕
윤용철 | 말글빛냄 | 2014-01-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인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다(三排九叩頭)
굴욕의 역사 병자호란 이 책 《병자호란 47일의 굴욕》은 1636년(인조14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욕스런 사건 중의 하나다. 역사 이래 우리나라는 많은 외적의 침입을 당하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일본에 의해 국권 침탈 등의 수난을 당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왕이 외국의 왕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술잔을 올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조선조의 인조가 유일하다. 물론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의 영류왕이 당나라에 압송되었다는 설은 있지만, 그래도 머리를 조아린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과 관련된 국내의 출판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병자호란과 관련된 많은 논문집들이 있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도서는 많지 않다. 이는 대중의 정서에 내재되어 있는 치욕의 역사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이 기억하고 있는 병자호란에 대한 지식은 협소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남한산성으로의 피난과 삼전도의 치욕, 최명길과 김상헌, 그리고 삼학사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이 거의 전부일 지도 모른다. 역사는 늘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파생해낸다. 그렇게 파생되어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철저히 객관적이다. 또한 저자는 추론을 삼가고 사실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온전히 자료에 의존함으로써 독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 근거를 나만갑의 《병자록》, 정약용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조선왕조실록》에서 찾고 있다. 특히 《병자록》의 저자 나만갑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옆에서 보좌하며 식량과 물품을 관리하던 양향사라는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직접 접하고 가감 없이 기록했을 것이다. 즉 저자가 말하는 《병자록》의 진실성에 대한 근거이다. 또한 저자는 조선조의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철저히 들추어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신뢰를 더해준다. 이 책 《병자호란 47일의 굴욕》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 남한산성 안에서의 47일 동안 일어났던 생생한 이야기들, 산성 밖의 전투, 전란 후에 병자호란으로 야기된 이야기들을 흥미 있게 구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건조한 역사서가 아닌 대중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부록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약력 및 해설을 곁들였다. 이 책은 당시와 오늘의 시대상황을 견주어 음미해볼만 한 대목이 많다. 강대국에 끼어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나, 국난에 처해 있으면서도 정치인들이 벌이는 탁상공론들이 오늘날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누구의 결정이 옳았는지 나름 주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늘 현재의 잣대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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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뻐끔이는 내 친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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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뻐끔이는 내 친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바다의 오염과 환경문제를 주제로 제작된 극단 갯돌의 첫 창작 아동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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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뻘소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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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뻘소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바다와 개펄을 생계로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마당극 특유의 재담과 신명 전통연희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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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강이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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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강이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목포의 한 여인이 구한말 목포 부두에서 일본 밀항선을 타고 일본 우토로에 정착하여 살아가야 하고 살아남아야 했던 질곡의 역사를 담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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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살아온 이야기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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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살아온 이야기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부당한 노동 현실에서 처절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한 남자의 고뇌를 그려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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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날이 올 때까지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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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날이 올 때까지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로 인하여 학생들의 고통이 증폭외어가는 안타까운 실정을 학생과 교사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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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
김예진 | 도서출판 수선재 | 2014-03-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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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
김예진 | 도서출판 수선재 | 2014-03-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세계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나라. 양반과 농민, 상인, 서얼, 천민 간의 신분의 구별은 뛰어넘어서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것이 조선의 세계관! 그런 세계에서 그는 서얼이라도 등용했을 뿐 아니라 노비제도까지 격파하고자 했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군주가 자발적으로 노비제를 없애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 있는 일. 정조이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선최초 도시형 성곽 수원화성. 조선의 왕이란 신분제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존재.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왕이 있는 곳은 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야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丁)자형 도시구조. 도시의 가장 정점엔 임금이 사는 궁궐과 관청이 그 아래엔 백성들의 거주지가 나열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중심은 행궁이 아닌 십자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대. 북극성처럼 하늘의 정점에서 가장 빛나야 할 별인 왕이 머무는 곳(수원행궁)은 도시의 외곽에 있다. 수원화성은 18세기에 완성되었던 21세기형 도시였다. 왕을 비롯한 양반이 중심인 시대에서 '길'과 '사람'이 중심인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정조이산.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다. 그것은 신(新)조선을 만들기 위한 추진기였다. 정조 이산의 마지막 계획은 수원화성을 성공 시킨 후 화성모델을 전국에 퍼뜨리려고 했던 것. 이를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키려고 했던 정조이산. 역할의 구분은 있되 상하의 차별이 없는 곳에서 만백성이 자신의 천명(天命)을 다하고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세계 역사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많았지만 신분제에 손을 대고, 관료중심이 아닌 백성중심의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왕이면서도 가장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있던 그는 과히 세계최초 군주혁명가라 칭할만하다. ※ 전자책 체험판을 통해 책의 내용을 미리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8세기 세계사를 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또 미국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세계가 요동치는 그때 우리나라는 왜 이런 일이 없었을까? 하지만 한반도에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동적인 변화가 꿈틀되었었다. 물질적 발전은 더뎠지만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깨인 지식인이었고, 또 총칼을 앞세우고 무력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보단 최대한 인명손실이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추구했다. 늦게 가는 것 같지만 최대한 업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조선은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조용하고 역동적인 변화의 한가운데 바로 세계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이 있었다.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나라. 양반과 농민, 상인, 서얼, 천민 간의 신분의 구별은 뛰어넘어서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것이 조선의 세계관! 그런 세계에서 그는 서얼이라도 등용했을 뿐 아니라 노비제도까지 격파하고자 했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군주가 자발적으로 노비제를 없애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 있는 일. 정조이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선최초 도시형 성곽 수원화성. 조선의 왕이란 신분제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존재.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왕이 있는 곳은 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야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丁)자형 도시구조. 도시의 가장 정점엔 임금이 사는 궁궐과 관청이 그 아래엔 백성들의 거주지가 나열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중심은 행궁이 아닌 십자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대. 북극성처럼 하늘의 정점에서 가장 빛나야 할 별인 왕이 머무는 곳(수원행궁)은 도시의 외곽에 있다. 수원화성은 18세기에 완성되었던 21세기형 도시였다. 왕을 비롯한 양반이 중심인 시대에서 '길'과 '사람'이 중심인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정조이산.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다. 그것은 신(新)조선을 만들기 위한 추진기였다. 정조 이산의 마지막 계획은 수원화성을 성공 시킨 후 화성모델을 전국에 퍼뜨리려고 했던 것. 이를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키려고 했던 정조이산. 역할의 구분은 있되 상하의 차별이 없는 곳에서 만백성이 자신의 천명(天命)을 다하고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세계 역사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많았지만 신분제에 손을 대고, 관료중심이 아닌 백성중심의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왕이면서도 가장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있던 그는 과히 세계최초 군주혁명가라 칭할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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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의 발견
라종일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08-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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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의 발견
라종일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08-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한국 학자의 이름을 건, 케임브리지대학의 한국학 연례강좌
케임브리지대학은 한국과 한국학에 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연례강좌를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강좌는 특이하게도 한국인 학자의 이름을 따서 개설되었다. 바로 라종일 박사이다. 그러나 라종일 한국학 연례강좌가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그 강좌명 때문만은 아니다. 라종일 한국학 연례강좌는 지난 시절 한국이 겪어온 경험과 한국의 지식인 및 정치?문화 지도자들이 가슴 속에 품어온 거룩한 염원을 영어 사용권 전역에 상세히 드러내고, 이에 대한 인식을 증진케 하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 학자의 생애사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의 궤적 ‘케임브리지대학 라종일 한국학 연례강좌’에서 첫 강연으로 포문을 연 라종일 박사는 자신의 생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사 강의를 한다. 최근의 역사연구는 사건 자체보다는 그 역사적 사건을 사회구성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각자의 생애를 통해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데, 라종일 박사의 첫 강연은 최근역사연구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한국사에서 가장 극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에 학계와 공공영역에 종사한 공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오며 현실세계에서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온 경험을 옛날이야기 하듯 청중과 독자에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생애사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하나의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가 한국을 발견하다. 한국이 세계를 발견하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두 세계간의 상호 발견으로 이해한다. 세계가 한국을 발견하고, 한국이 세계를 발견한다. 그러나 두 세계의 발견이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세계는 저자가 ‘미니 세계 전쟁(Mini World War)’이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겨우 한국을 발견하게 됐다. 세계의 외딴 구석에서 민족의 정통성을 놓고 경쟁하는 두 정권 사이의 내란이, 그 당시의 특수한 세계정세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으면서 한국전쟁은 전 세계적 내전(global civil war)이 되었다. 한국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한참 후인 1988년 올림픽을 겪으면서이다. 과거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힘겨루기에 휘말려 피동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냉전에 일조했던 한국이 올림픽 주최국이 되어 능동적으로 냉전 해소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이때 이념대립과 과거의 반목을 넘어 자유세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발견하고 있었다. 분별력 있는 ‘불만의 문화’는 위기를 축복으로 만든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에게 기적과도 같은 경험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원천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저자는 그 원천으로 적대적 관계의 역동성을 꼽는다. 북한의 문화를 ‘만족의 문화’라고 한다면 남한의 문화는 ‘불만의 문화’이다. 한국인들은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는 예술가처럼 계속 정진하게 하고 더 움직이게 하는 불만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불만의 문화’는 앞으로도 한국사회가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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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파 방정환 평전 - 문화예술을 사랑한 어린이 인권운동가
민윤식 | 스타북스 | 2014-05-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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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파 방정환 평전 - 문화예술을 사랑한 어린이 인권운동가
민윤식 | 스타북스 | 2014-05-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우리는 방정환을 너무 몰랐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날의 창시자’라는 수식어로 인해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안타까운 위인이다. 33년의 생애 동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다해 그가 구하고자 한 일은 나라의 독립이었다. 하지만 전방위적 실천가였던 그에게는 단 하나의 수식어만을 대표적으로 붙일 수가 없다. 방정환을 하나의 ‘주의(ism)’ 안에 집어넣기에 그의 깨어 있는 정신과 포용성은 너무도 넓었기 때문이다. 방정환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독립을 반드시 이루어 내도록 인권운동을 하였을 뿐 아니라, 폭넓은 문화적 감수성으로 사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예술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그 방법으로 어린이운동과 ‘잡지’라는 매체를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소파의 일생을 치우치지 않게 그리기 위해, 저자는 소파의 아들과 소파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소파의 일본 유학지를 방문하였음은 물론 1920~30년대의 신문과 잡지를 거의 확인하고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도서관, 중앙대도서관, 강원대도서관, 천도교회 자료실 등을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소파는 투쟁보다 화합을, 이념보다 인간애에 비중을 더 크게 둔 운동가였음을 분명하게 확인해 내었다. 어린이날의 창시자라는 이유로 진면목을 인정받지 못한 거인 『방정환 평전』은 제한된 틀 속에 가둘 수 없이 ‘큰 생각’을 실천한 ‘큰 사람’ 소파 방정환의 일대기이다. 책에는 대가족제도ㆍ식사 준비ㆍ전통 의복과 주택의 개선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한 실용주의자 방정환, 사회를 개혁하고자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사상에 구속당하지 않은 진보주의자 방정환, 남녀가 다르지 않으며 계급에 따라 인간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평등주의자 방정환, 계급주의의 모순으로 희생당하는 민중을 염려하고 나약한 위치에 있던 여자와 아이들을 위하고자 애쓴 박애주의자 방정환, 서구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소개해 민중의 자주ㆍ독립ㆍ자유의 사상을 인식시키고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한 열정적 문화운동가 안정환, 전 세계 20개국이 참가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을 개최한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벤처형 문화 사업가 안정환, ‘비행사 안창남 귀국 비행’ 같은 온 민족이 열광하는 쇼를 추진한 이벤트 기획자 방정환, 「은파리」라는 풍자문학을 통해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불평등 구조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가진 자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 세태를 칼끝처럼 날카롭게 비판한 사회비평가 방정환, 《개벽》《어린이》《신여성》 등 10개의 잡지를 발행한 탁월한 저널리스트 방정환, 어린이날 선전문ㆍ소년보호운동 문구ㆍ잡지 광고 문구 등을 완성한 명카피라이터 방정환, 매해 70여 회 이상 생애 통산 1,000번 이상의 동화구연대회ㆍ연극 공연ㆍ강연회를 진행하여 청중을 사로잡은 명강사 방정환, 중앙보육학교와 경성보육학교에서 아동 유희를 강의한 훌륭한 교육자 방정환… 등 하나의 주의로 담을 수 없는 소파 인생의 장대한 감동을 담고 있다. 소파의 어린이날 선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린이날은 왜 단순한 잔칫날이 아니라 독립운동과 맥이 닿아 있는가 소파의 어린이(소년)운동에 대한 기본 인식은 독립운동을 촉발하고자 함이었다. 당시 조국의 현실은 어른을 상대로는 어떠한 운동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극도의 탄압에 못 이겨 우리 민족의 양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그들이 현실에 무너져 국권피탈에 순응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행동’을 해야 했으나 일본인들의 날카로운 경계의 눈빛은 삼엄했다. 그랬기에 겉으로는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평범한 단체인 양 보이게끔 했던 것이다. 어린이를 운동의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이유는 짓눌림과 가난 속에서 웃음을 잃은 슬픔 많은 어린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약해서 가장 다치기 쉬운 어린 시절을 지켜 줌으로써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건강한 국민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것이다. 아이들의 주인 정신이 이 나라를 지키는 힘으로 커지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직 현실에 찌들고 무기력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고, 어른된 자들이 그들을 돌보고 지켜 준다면 국권 회복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다는 의지였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소파와 민주적 인권 옹호와 일제 저항운동의 방편으로 소년운동을 자각한 색동회 인사들의 사상이 결합하여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어린이날’ 제정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소파와 천도교 조선소년운동협회가 발표한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은 세계 최초의 아동인권선언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9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소파가 외친 ‘어린이 선언’은 유효하다. ‘사람의 권리’라는 기본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는 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면 21세기 초인 오늘날에는 주체성을 찾아내기 위한 독립운동이 펼쳐져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소파가 어린이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과정 그의 사상적 변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소파는 10세까지는 집안이 부유하여 어른들이 경제에 대한 개념을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완전히 몰락하면서 하루 먹을 쌀이 없어 꾸러 다니고, 땔나무를 해다 팔고, 학비가 없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극빈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좌절하거나 극단적인 사상을 갖거나 편협한 안목을 갖지 않았던 데는 소파의 낙천성, 삶에 대한 열정, 천도교도였던 가족의 영향이 있었다. 소파의 아버지는 천도교도로서 동학혁명에 적극 참여하였고, 소파는 그 바탕에 있는 민족적 주체성과 자긍심을 자양분으로 흡수하며 자라났다. 소파에게 생명의 소중함이란 공기와도 같았을지 모른다. 고작 7살 때 스스로의 의지로 신식학교를 선택해 다니고, 10살 때는 토론 모임을 만들어 아이들을 이끌었으며, 12세의 나이로 소년유년군을 조직해서 160여 명을 휘하에 둔 총대장을 지낸 일 등은 유년 시절부터 남달랐던 소파의 비범함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따듯한 감수성을 지녔던 소파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군국주의를 숭상하며 학생들을 군인처럼 훈련하는 교육 행태를 체험하며 ‘인권’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인권과 자유의 중요성을 느끼며 성인이 된 소파가 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순간 “내가 이렇게 간다니 창피해”라고 한 말 속에 그의 한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방정환의 운명의 사람, 의암 손병희와 만해 한용운 민족의 큰 스승과의 만남 소파는 어린 시절 당대의 문학가들이 펴낸 잡지를 보며 자신의 막연한 뜻에 실체를 더하고, 문화가 사람의 정신을 깨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소파의 무의식 속에 문화운동에 대한 열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소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이와 같은 잡지에 투고하면서 대작가가 되고자 하였다. 그 자신이 책에서 눈부신 신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고를 투고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스승 만해 한용운과의 만남도 시작된다. 소파는 제2의 고향을 만해의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여길 만큼 한용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 하나 소파의 인생을 가르는 중대한 인연은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와의 만남이다. 나중에는 손병희의 사위가 됨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던 소파에게 분명한 길이 열리게 된다. 사람에게 아무리 큰 뜻이 있다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소파는 당대의 대표적 인물인 만해와 의암 선생을 만났으니 가히 하늘이 인생의 문을 열어 주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거기에는 소파의 따듯하고 순수한 진심, 열린 사고, 그리고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우선하고 있다.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선택한 ‘잡지’ 잡지 저널리즘의 창시자 소파 방정환 민족 자주권 회복을 고민하던 소파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문화운동이었고, 그 최고의 매개체는 출판물이었다.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어 문학작품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생각한 소파는 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서 온 조선에 정신적인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였다. 나라의 장래는 어린이(소년)에게 있고, 나라가 변하려면 어린이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소파는 교육+실리+흥미가 결합된 잡지 《어린이》를 만들었고 그 잡지의 필자로서 요즘 시대의 슈퍼스타와 같은 인기를 끌었다. 잡지 운영 방식이나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행했던 이벤트들은 현재까지도 이어진 것으로써, 소파의 머릿속에서 나온 우리나라 잡지의 기원을 확인해 보는 것도 『방정환 평전』을 읽는 재미라 하겠다. 서울 인구 30여 만 명에 신문 발행 부수가 5만이던 당시 《어린이》지는 10여 만 독자를 확보하였으니, 이 수치만으로도 소파의 기발하고 진취적이었을 역량이 짐작된다. 소파가 독자를 늘리기 위해 힘을 쏟았던 이유는 수익 때문이 아니라 소년운동을 위한 투자가 목적이었다. “더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여 그래도 우리가 안타깝게 무엇을 구하기에 노력하는 것은 내일은 잘될 수 있겠지 하는 한 가지 희망 때문이고, 그 희망이란 내일의 조선 일꾼 소년 소녀들을 잘 키우는 것밖에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지가 발행된 출판사는 천도교청년회 편집부의 지원을 받는 개벽사로서 소파는 이 공간에서 총 10개의 잡지를 발행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아동문학가를 길러 냈을 뿐 아니라, 《개벽》 등의 잡지를 통하여 사회를 개혁하고 혁신하고자 한 진보적 젊은이들의 사상과 생각을 담아내었다. 소파가 친일 매국 행위를 했다? 3.1 독립운동 직후 지식인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선진 문명을 받아들인 그들에게서 배울 게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파가 살았던 시대의 일본 유학을 곧, 친일 또는 친일적 성향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마찬가지로 소파가 유학한 최고의 이유는 독립운동을 함께할 동지를 만나고 얻기 위해서였으며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선진사회의 사상들을 습득하기 위함이었다. 소파가 순수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개벽사를 기반으로 한 문화 활동을 비롯하여 그가 쓴 글들을 확인한다면, 소파의 현실 인식과 나라의 독립을 위한 수단을 어떻게 강구하였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생애 통산 800편 이상의 글을 남긴 소파는 아이들을 위한 순수 문학작품 외에도 실용적인 글, 발랄한 유머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글, 풍자적이고 통렬한 사회 비판적인 글까지 전방위적으로 썼다. 그 가운데 연재물 「은파리」를 보면 일제 경찰이 왜 그토록 방정환을 끊임없이 미행하고 감시하고 투옥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한편 살림살이에 관한 글은 90년 전에 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보적이고 실용적이다. 소파는 일본 경찰 요시찰의 대상으로서 몇 차례 검거되어 고문을 받는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파는 풍부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품고 부조리를 통렬히 비난한 실천가였다. 소파의 활동은 소년운동을 들불처럼 타오르게 했고, 나라 잃은 사람들에게 조선의 정체성을 가르쳐 주었고, 불우한 환경을 비관하며 절망에 울던 소년들에게 희망을 되찾도록 해 주었고,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를 왜 존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소파 방정환 평전』이 소파를 협소한 사상가로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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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황사구, 그 향기에 빠지다
채준병 | 좋은땅 | 2014-11-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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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황사구, 그 향기에 빠지다
채준병 | 좋은땅 | 2014-11-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국보 제8호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90여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을 가득히 품고 있는 보령은 그 자체로 보고(寶庫)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간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소황사구’를 만나게 된 것은 저희에게는 ‘기쁨’ 그 자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환경에 대한 부족한 식견을 한층 보완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생태 보령’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동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관리청인 금강유역환경청과 녹색기업(충남권 삼성사업장)의 적극적인 참여로 단순한 보전지역에서 “생태교육이 가능한 학습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소황사구’는 보령의 유일한 살아 있는 생태학습장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황사구를 이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 축적된 자료의 일부를 소개하기 위한 기초 자료집을 발간하게 된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보령은 직선거리 약 37km의 해안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소황사구는 남쪽으로 서천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위치한 연안습지 지역입니다. 소황사구가 오늘의 생태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구 배후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군사보호구역(공군사격장)의 덕이라 하겠습니다. 지금도 날씨가 허락하는 경우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전투기의 사격 훈련이 계속되는 지역입니다. 전투기는 사구 배후지역 육상에 표적지를 두고 공중사격 훈련을, 그리고 사구 정면 해상에 위치한 무인도인 ‘황죽도’를 향해 훈련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 여건에도 불구하고 소황사구는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연안습지 지역입니다. 소황사구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유관기관과 함께 소황사구 보전관리협의회, 소황사구 보전활동을 위한 협약식, 소황사구 정화활동, 그리고 2011년에는 유관기관장을 모시고 “소황사구 생태학습장 제막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금번의 소책자는 수년간 소황사구 보전활동을 통해 축적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소황사구의 의미와 기능’ ‘사구의 현황’ ‘사구의 식생 및 생물상’ ‘보전활동’ ‘생태학습장의 비전’을 차례로 소개하는 첫 번째 발간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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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험에 꼭 나오는 한국사 용어풀이 101
김이식 | 진한엠앤비 | 2014-0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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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험에 꼭 나오는 한국사 용어풀이 101
김이식 | 진한엠앤비 | 2014-0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한국사 용어풀이 101』은 우리 역사를 101가지 용어로 정리한 책이다. 국내외 각 시험 문제를 분석하여 출제된 용어 중 빈번히 출제되는 용어를 선별하여 수록했다. 단순한 개념 정리가 아니라 그 용어들의 배경이나 의의 등 심층적으로 정리하여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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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 권력투쟁과 풍수로 읽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이정근 | 책보세 | 2014-10-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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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 권력투쟁과 풍수로 읽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이정근 | 책보세 | 2014-10-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은 1405년, 박자청이 제릉을 수축한 이후 1966년 순정효황후를 유릉에 안장하기까지 561년간 진행된 대 역사役事의 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가 북한에 있는 제릉, 후릉을 제외한 조선왕릉 40기를 직접 답사하면서 쓴 책이다. 저자는 조선이 유교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풍수사상을 숭상했다면서 왕릉의 조영 배경을 설명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왕릉이 악용된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560여 년간 일관된 형식을 유지한 상설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시대 변화에 따라 조금씩 그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조형물들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권력투쟁과 풍수로 읽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은 조선왕릉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한 권으로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조선왕릉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바로 풍수지리와 왕릉의 구조 그리고 왕릉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다. 이 세 가지는 조선왕릉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조선은 표면적으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유교국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불교와 풍수지리를 숭상했다. 특히 임금을 비롯한 사대부들은 잦은 정변과 사화로 인한 불안심리를 풍수사상으로 보상받으려 했는데 왕릉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로까지 종종 연결되었다. 정적 제거를 위해 멀쩡한 능을 파헤친 김안로의 ‘희릉천장사건’이 왕릉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 왕이 된 아들이 재위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혹은 어머니를 왕후로 추존하는 작업을 종종 시도하기도 했는데, 저자는 아버지 추존에 실패한 선조와 성공한 인조의 예를 들면서 임금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되었다고 말한다. 묻히고 싶은 곳에 묻히지 못한 왕도 있다. 정조는 정성왕후 옆자리에 묻어달라는 할아버지 영조의 유지를 따르지 않았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사사한 것에 대한 앙금이 남아서일까, 정조는 이미 물이 고인다는 이유로 흉지로 판명된 자리에 영조를 묻었다. 561년간 일관되게 유지된 왕릉의 상설제도에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참도, 정자각, 석물의 양식 등은 정치적 상황이나 조영 당시의 시대 양식에 따라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세조는 국장의 과도한 국력낭비를 개탄하면서 이를 최소화하도록 했는데 실제로 세조가 묻힌 광릉은 병풍석이 없고 석물도 아담하다. 선조가 잠든 목릉의 석물은 조선왕릉 중 조형미가 가장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란을 겪으며 많은 장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조선왕릉은 능의 풍수적인 위치뿐 아니라 금천교로부터 곡장 뒤 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깊은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다. 저자는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 후릉을 제외한 조선왕릉 40기를 직접 답사하면서 각 능이 가진 특색과 그 숨은 이야기들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흥미롭게 풀어냈다.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파주삼릉 내 관통도로를 원형대로 복원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도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훼손된 채로 남아 있는 왕릉이 많다. 저자는 군사독재시절 잘못된 문화재관으로 훼손된 왕릉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비공개 능으로 묶인 일부 능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훌륭한 문화유산을 세계인이 공유하자’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취지에 부응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왕릉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그 숨은 이야기들을 가장 재미 있고 사실적으로 풀어낸 책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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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박병남 | 진한엠앤비 | 2014-03-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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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박병남 | 진한엠앤비 | 2014-03-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신라본기를 해석한 책. 저자는 신라가 B.C 57년 혁거세가 6부족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운 이래 마지막 경순왕까지 약 1,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대륙을 지배했던 우리의 선조이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왕국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신라는 절대 한반도에 있었던 소국(小國)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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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알기 쉽게 읽는 우리 역사상식 100 호암 문일평의 사화백제
플레이북 편집부 | 플레이북 | 2014-02-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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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알기 쉽게 읽는 우리 역사상식 100 호암 문일평의 사화백제
플레이북 편집부 | 플레이북 | 2014-02-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 사람들이 꼭 좀 알아야 할 100가지 주제를 선별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재미있는 책이다. 호암 문일평이 연재했던 것을 호암 문일평이 죽은 뒤에 대한금융조합연합회에서 엮은 책이다. 그 당시의 일반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지금의 사람들이 읽어도 되는 우리나라 역사의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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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암행어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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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암행어사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생활하수, 축산폐수, 공장폐수 등으로 인한 영산강의 오염실태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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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머니의 땅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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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머니의 땅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1990년대 노동운동탄압 분쇄투쟁에서 자본가와 정권측이 민주노조를 타격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마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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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부놀이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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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부놀이
극단 갯돌 | (주)크레펀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신안군의 한 섬마을을 배경으로 선주와 어민들간의 갈등, 생활상의 애환을 극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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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바꾼 고대의 명전투들
신은미 | 유페이퍼 | 2014-03-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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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바꾼 고대의 명전투들
신은미 | 유페이퍼 | 2014-03-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역사 상 유명했던 고대의 전투들을 소개한 책이다.
전쟁의 발발 원인과 전개상황, 종전까지의 과정뿐만 아니라 전쟁에 영향을 끼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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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실력을 높여주는 한국사 연표
이윤섭 | 이북스펍 | 2014-03-0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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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실력을 높여주는 한국사 연표
이윤섭 | 이북스펍 | 2014-03-0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한국에서 국사가 ‘어려운 과목’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지나치게 압축해 교과서를 기술한 것이다. 2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중·고교역사 교과서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1천 페이지가 넘으며 사진이나 도판 자료도 많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며, 추천 참고도서도 상당수이다. 이에 비해 훨씬 역사가 긴 한국사 교과서는 분량이 기껏해야 3, 400페이지로 매우 빈약하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 기술 분량을 역년(歷年)에 비례하여 살펴보면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국사 서술 분량이 이토록 빈약하니 상당한 정도의역사 관련 서적을 미리 읽어두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역사 용어가 대부분 한자 용어라 한문 교육이 부실해진 요즈음은 더 난해한 과목이 되었다. 국사나 세계사 이해를 위해서는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므로 대략 교과서 10배 분량 정도의 역사 관계 교양역사서를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연표 공부가 바람직하다. 연표는 주요 사건을 연대 별로 간략히 기술한 것이므로 이를 학습하면 주요 사건과 그 선후 관계가 상당히 정확히 정리된다. 역사 공부에 왕도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중요 사건의 개요를 알고 그 선후 인과를 기억하면 이해가 훨씬 수월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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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웅의 참모들
이윤섭 | 이북스펍 | 2014-01-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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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웅의 참모들
이윤섭 | 이북스펍 | 2014-01-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2-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조선 함대는 일본 수군과 맞서 23전 23승의 전과를 기록했다. 당시 조선 육군은 부산성을 시초로 한달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당했다. 한양을 점령당한 그 때 수군은 옥포해전에서 첫 승전보를 알리며 조선 군의 위용을 지켜 내게 된다. 그리고 한 때 궤멸위기에 놓인 풍전등화의 조선을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명량대첩을 승리하며 일본군을 조선에서 몰아내는데 크게 일조 하게 된다. 우리는 이순신 제독의 뛰어난 능력을 꼽지만 영웅과 함께한 참모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을 만든 영웅의 참모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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